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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06월15일 죽은 사람들의 부활도 이와 같습니다. 썩을 몸으로 묻히지만 썩지 않을 것으로 살아납니다. 비천한 가운데 묻히지만 영광 가운데 살아납니다. 약한 사람으로 묻히지만 강한 사람으로 살아납니다. 자연의 몸으로 묻히지만 영적인 몸으로 살아납니다. 자연의 몸이 있다면 영적인 몸도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42절~44절) 이것은 나의 소망입니다. 지금은 약하고 부족하지만,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는 그날을 기다립니다. 지금의 허무함이 그날에는 큰 보람이 될것이니, 그것을 위해 나는 기쁨과 감사로 살아갑니다.
토빗기(셰페르 토비) 교회에서 취급하지 않는 제2경전을 알아보는 것도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비록 교회의 정경에는 포함되지 못했지만 당시 사람들의 역사와 문화를 확인할 수 있거든요. 다비드의 계보는 남국 예후다를 거쳐 예슈아에 이르게 되요. 예후다 멸망 이후의 상황은 느비임을 통해 확인할 수 있어요. 그렇다면 북국 이스라엘 멸망 이후의 상황은 과연 어땠을까요? 토빗기라고 하는 이 책은 앗시리아에 살았던 토빗 부자의 이야기에요. 히브리어로 토비(טובי)라고 하는데 '나의 선하신'이라는 의미에요. 그 아들인 토비야(טוביה)는 '나의 선하신 여호와'라는 의미이죠. 배경은 북국 이스라엘 멸망 이후로 예상되요. 토비는 납탈리 가문의 사람이라고 해요. 이 책의 제목과는 달리 실제 주인공은 아들 토비야이죠. 줄거리는 다음과 ..
치유의 의미 어떻게 교회에 다니게 되었나요? 누군가의 전도로 다니게 되는 경우도 있고, 부모님이 다니셔서 같이 다니게 되는 경우도 있죠. 예전에는 부흥집회가 많아서 거기서 다니기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모든 교회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치유의 은사'라는 것으로, 많은 사람들의 병을 치료하고 명성을 얻는 경우도 적지 않았죠. 그 목사들이 치유의 은사를 내세우는 근거는 말라기에 있었어요.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말라기 4장2절에 있는 이 구절을 근거로, 마치 주술 같은 퍼포먼스로 치료의 기적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었죠. 안타까운 것은 '치료'라는 대가를 바라면서 시작된 믿음이, 또다른 대가를 바라는 기복신앙으로 변질된 것이죠. 믿음은 대가를 위한 투자가 되고..
주가 일하시네 주가 일하시네 비록 나의 삶에 삶에 어떤 고난이 있어도, 쉽게 꺾이지 않고 살아남는 이유는... 바로 그 분이 날 위해 일하기 때문이죠. 내가 할 수 있는건 오직 한 가지. 그 분을 믿고 사랑하는 것. 그 분이 날 사랑하는 만큼은 못해도...
2020년06월08일 부지런히 선을 구하는 사람은 은총을 얻지만 악을 좇아가는 사람은 그 악이 자기 머리 위에 떨어질 것이다. (잠언 11장27절) 선은 처절한 방황 끝에 만났고, 악은 지금도 손 뻗으면 닿는 곳에 있어요. 선은 망상일 뿐이라고 내가 착각했던건, 그만큼 간절함이 없었기 때문이죠. 지금은 간절합니다. 나와 함께 있어도 언제나 절실합니다.
요한계시록(아포칼립시스 이요안누) 성경 전체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책은 과연 어떤 내용일까요? 하나님의 말씀은 과연 어떻게 맺게 될까요? 이 책은 어떻게 보면 신앙인이 가져야 할 목표를 제시하고 있어요. 저자인 요하난이 복음서와 서신서를 기록한 사도 요하난과 동일인물인지는 설이 많아요. 가장 유력한 설은 사도 요하난이 바트모스 섬에 유배되었을 때 기록한 책이라는 설이죠. 이 책은 굉장히 많은 해석과 논란을 낳고 있기도 해요. 이 책의 원제는 Ἀποκάλυψις Ἰωάννου로 '요하난의 드러냄(계시)'라고 해석될 수 있어요.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미래까지의 일들을 기록하고 있죠. 굳이 비교하자면 구약의 느비임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책이라고 볼 수 있죠. 예사야, 이르메야, 예헤즈켈, 다니엘처럼 하나의 큰 흐름을 가지고, 다양한 비유와 환상..
방언과 예언 예전 교회에서는 방언(方言)을 굉장히 강조했어요. 성령의 은사이기 때문에 방언의 가능여부가, 성령을 받은 증거라고 가르쳤었죠. 방언은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로 기도하는 것이었어요. 심지어는 수련회 마지막날 밤인 '은혜의 시간'에는, 방언을 못하면 자러 가는 것도 허락되지 않을 정도였어요. 유감스럽게도 저는 아직도 그 방언 기도는 하지 못해요. 대체 그 방언이 무엇인지 항상 궁금했어요. 방언은 그리스어로 글롯사(γλωσσα)라고 해요. 말이나 언어를 의미하죠. 처음 방언이 나오는 부분은 사도행전의 오순절 사건이에요. 일행이 한 곳에 모였더니 갑자기 성령이 가득해 지면서, 각 지방의 언어로 말하기 시작했다는 것이었죠. 흥미로운 사실은 이들이 방언으로 기도를 했다는 말은 없어요. 그 당시 로마의 여러 지방에서..
아무것도 두려워 말라 아무것도 두려워 말라 세상일에는 두려운 상황이 너무 많아요. 그 어떤 것도 안정적인 것이 없기 때문이죠. 늘 불안과 공포 속에서 오늘은 괜찮을지, 내일은 무사할지 걱정하게 되죠. 하지만 그 분은 우리를 지켜주세요. 비록 지금은 막막하고 불안해 보여도, 실은 가장 안정적으로 붙잡아 주고 계세요. 비록 앞이 안 보여도 믿고 걸어 나가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