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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의 생각/삶 돌아보기

목사는 같은 성도

목사, 목회자라고도 하죠.

많은 교회에서는 목사를 특별히 대우하죠.

어떤 교회에서는 아예 목사를 절대적으로 신뢰하며,

순종해야 하는 대상으로 보기도 해요.

교회를 구성하는 성도들보다 위에 있는 존재가 되기도 하고요.

과연 목사는 어떤 존재일까요?

 

성경에서 목사라고 하는 단어는 에베소서 4장11절에 한 번 언급되요.

포이네(ποιμήν)라고 하는데 기본적으로는 '양치기'를 의미해요.

또는 교사로 해석되기도 하죠.

같이 언급된 사도는 아포스톨로스(αποστολους)로 '심부름꾼'을,

선지자는 프로페테스(προφητας)로 '예언가(신의 말씀을 전하는 자)'를,

복음 전하는 자는 에우앙겔리테스(ευαγγελιστας)로 '말을 전하는 자'를,

교사는 디도스칼로스(διδασκαλους)로 말 그대로 교사를 의미하죠.

여기에 나열된 직책들은 교회 안의 지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에요.

같은 성도들 사이에서 맡는 '역할'인 것이죠.

 

성도는 하기오스(αγιος)라고 해서 '신에게 바쳐진' 또는 '신성한'으로 해석되요.

이미 믿음으로 세상 사람들과 구별된 사람들 속에서,

또다시 어떤 구별이 필요한 것일까요?

그 믿음 안에서는 모두가 하나인데요.

 

초대 교회는 로마의 박해를 피해서 가정이나 지하실에 숨어서,

소그룹으로 예배를 드리곤 했어요.

작고 많은 교회에 파견되기에는 사도들의 수는 굉장히 부족했죠.

그래서 직접 방문하기 힘들었던 사도들은 편지로 말씀을 전했어요.

그들은 관리자가 아니라 성도들의 신앙을 위한 상담자(Counselor)였던 것이죠.

교회의 상석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을 위한 자리일 뿐,

모두가 같은 자리에서 교제하며 화목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예배였어요.

 

세월이 흐르고 로마의 국교로 카톨릭이 만들어 지면서,

규모가 커진 교회들은 국교에 어울리는 체계를 갖추어야 했어요.

기존 종교의 신전들처럼 말이죠.

그래서 신전을 관리하는 사제와 같은 존재를 두게 되고,

그것이 지금의 목사가 되었다고 볼 수 있죠.

하지만 이것은 소박하고 평등했던 초대 교회와는 다른 방향이었어요.

 

목사에게 권위가 부여되면서,

말씀도 목사를 중심으로, 믿음도 목사를 중심으로 변해갔죠.

어느샌가 성도들과 같은 위치에서 말씀을 전하는 존재가 아닌,

성도들 위에서 명령(법)을 내리는 존재가 되고 만 것이죠.

같은 믿음으로 하나가 된 성도들을 멀리서 후원하던 상담자는,

성도들을 다스리는 왕이 되고 말았어요.

 

우리의 믿음은 단 하나를 향하고 있어야 해요.

그것이 하나님을 향하고 있는지,

하나님의 위세에 기댄 사람을 향하고 있는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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