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이 중간에 접어들었을 즈음에,
예슈아께서 성전에 올라가서 가르치셨다.
유대 사람들이 놀라서
"이 사람은 배우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저런 학식을 갖추었을까?"
하고 말하였다.
예슈아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나의 가르침은 내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이 가르침이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인지,
내 마음대로 말하는 것인지를 알 것이다.
자기 마음대로 말하는 사람은
자기의 영광을 구하지만,
자기를 보내신 분의 영광을
구하는 사람은 진실하며,
그에게는 불의가 없다.
(요한복음 7장14절~18절)
로마 시대의 이스라엘은,
바빌로니아의 식민지 시대를 거치면서
히브리어를 잊고 아람어를 익히고 살았어요.
히브리어로 된 성경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은
소수의 엘리트 뿐이었죠.
그런데 그런 엘리트 그룹이 아니라 목수인
예슈아가 성경을 강의하는 것을 보면서
사람들은 굉장히 놀랐어요.
이스라엘 사람들은 선민의식에 빠져 있으면서,
굉장히 세속적이고 허영심이 강했어요.
남에게 어떻게 보여질 지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지위에 예민하게 반응하죠.
그런 사람들에게 목수인 예슈아가 성경을
가르친다는 것은 충격적인 사건이었어요.
그들은 복음에 놀라고 감동한 게 아니라,
단지 못 배운 목수에게 그 지식 있다는
사실에만 주목하고 있었어요.
결국, 그들은 복음을 받아들일
겸손함을 갖추지 못한 거에요.
지위(환경)와 노력에 따라 얻으면
그것은 보상이라고 해요.
직장, 학교 등은 어떻게 보면
개인의 노력에 대한 보상이죠.
하지만 복음은 보상이라고 하지
않고 은혜라고 해요.
은혜는 그냥 주어지는 것이에요.
은혜가 주어지기 위한 조건은
하나님 앞에서의 겸손함이에요.
예슈아는 이렇게 말하죠.
"나의 가르침은 내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것이다."
이 말로 이미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포기하고,
그 자랑을 하나님께로 돌린 것이죠.
우리는 주변에 자랑하며 허영을 채우기 위해
하나님을 믿는 게 아니잖아요.
자신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겸손.
그것이 신앙의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예슈아가 칭찬한 사람들은
파리사이, 사두카이, 에세네, 젤롯
등의 쟁쟁한 사람들이 아니었어요.
오히려 그 잘난 사람들은
'뱀새끼'라며 욕을 했어요.
용서 받거나 칭찬 받은 사람들은
과부, 창녀, 어부, 환자, 걸인
등의 사회 하층민들이었어요.
겸손할 수밖에 없는 이들이
먼저 선택된 거에요.
저는 참 부족한 인생인 것 같아요.
가난, 질병, 부족한 학력 등
컴플렉스가 될 요소가 많죠.
하지만 그래서 더욱 감사해요.
제 자랑이 없기 때문에 정말
순수하게 하나님께 매달릴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하나님과 가깝게
살 수 있어서 감사해요.
저의 자랑, 저의 지혜는
저를 보내신 하나님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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