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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의 생각/삶 돌아보기

긍휼은 사랑의 실천

"내가 바라는 것은 인애이지 제사가 아니며, 하나님을 아는 것이지 번제가 아니다."(호6:6)

"너희는 가서 ‘내가 원하는 것은 제사가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워라."(마9:13)

 

교회에서 긍휼(矜恤)이라는 말을 정말 많이 써요.

하지만 그 진짜 의미를 알고 실천하고 있을까요?

이 말은 일상 속에서는 거의 쓰지 않는 말이기도 해요.

교회에서 주로 듣게 되는 말이죠.

그 의미는 '불쌍히 여겨 돌보아 준다'에요.

한글성경에서는 인애, 긍휼, 자비, 은혜 등 여러가지 단어로 혼용해서 표기되고 있어서 다소 애매한 느낌을 줘요.

그렇다면 원어로는 어떤 단어일까요?

 

구약에서 주로 말하는 긍휼은 히브리어로 라하밈(רחמים)이라고 해요.

이 단어는 자궁을 뜻하는 라함(תגיד)에서 파생되었어요.

다시 말해, 이것은 모성애에서 나오는 본능적인 동정과 사랑을 의미하죠.

그리고 헤세드(חסד)라는 단어도 쓰여요.

이것은 시편에서 '인자하심'으로 특히 많이 사용되었죠.

 

예슈아가 말한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으니...'의 긍휼은 코이네 그리스어로는 엘레오스(ἔλεος)라고 해요.

이것은 비참한 상태에서 유발된 반응으로 쓰여요.

파울로스가 언급한 자비와 긍휼은 오익티르모스(οἰκτιρμός)라고 해요.

이것은 약자에 대한 동정을 의미하죠.

 

이 단어들은 하나님의 속성인 '사랑'을 의미하는 단어들이에요.

단순히 관심에서 끝나는 사랑이 아니라,

본능에 가까운 끊을 수 없는 동정과 실천이죠.

하나님은 예슈아의 죽음으로 이 사랑의 실천을 보여주었어요.

 

우리는 하나님을 동정할 수 없어요.

우리가 불쌍한 존재이지, 하나님이 불쌍한 존재는 아니거든요.

그렇다면 우리의 동정과 자비의 방향은 어디를 향해야 할까요?

바로 우리 이웃들에게 향해야 해요.

여기서 '구제'라는 단어를 언급할 수밖에 없겠군요.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바로 구제에요.

주변의 어려운 이웃들을 돕는 것.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라고 강조하는 것이 은혜(חסד:헤세드)와 진리(אמת:에메트)죠.

그러나 현재 교회들에게 가장 결여되어 있는 것들이기도 해요.

사실 은혜와 진리는 받은 것을 주변에 나눠 준다는 기초적인 원리에요.

받은 은혜를 전하지 않고 쌓아놔서 교회는 몸집만 커져 버린 거죠.

그리고 자연스럽게 진리는 막혀 버리고 만 것이고요.

 

사랑의 실천은 또다른 사랑을 불러오게 되어 있어요.

오고 가는 사랑 속에서 더욱 커져 가는 사랑.

하나님의 속성을 드러내며 하나님과 닮아가는 교회.

이것이 바로 성경에서 말하는 긍휼의 정체이죠.

 

"복되도다! 자비로운 사람들이여, 그들은 자비를 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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