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용]서의 생각/삶 돌아보기

십자가의 가치

우리는 많은 교회가 지붕에 십자가를 달고 있는 걸 볼 수 있어요.

교회에서 십자가는 굉장히 중요한 가치를 가지죠.

심한 곳은 아예 십자가를 우상처럼 떠받들기도 해요.

반대로 몇몇 교회에서는 십자가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기도 해요.

과연 십자가는 무엇이고, 어떤 의미를 가지는 걸까요?

 

십자가의 원어는 σταυρος(스타우로스)로 '말뚝, 막대기' 등을 의미하는데,

주로 십자가형에 쓰인 형틀이었죠.

이 형을 받는 죄수들은 기절할 정도로 채찍을 맞고,

온 몸의 피부가 찢어져 너덜너덜해진 상태로 십자가를 매고 처형장까지 걸어가요.

이 십자가는 약 18kg에서 50kg까지 예상을 하는데,

어쨌든 만신창이가 된 사람에게는 가혹한 무게죠.

처형장에 도착하면 죄수는 속옷까지 벗겨져 알몸이 되고,

손목과 발목에 17cm 전후의 초대형 대못을 박아 형틀에 고정시키죠.

 

십자가에 매달리기까지의 과정도 끔찍하지만 이후는 더욱 끔찍해요.

채찍질로 생긴 상처와 대못이 박힐 때의 상처 때문에 죄수는 저혈량성 쇼크를 일으키게 되요.

그리고 대못의 위생상태 때문에 손발에 파상풍이 생기게 되죠.

체중 때문에 대못이 박힌 손과 발에는 엄청난 압박이 가게 되고 숨도 쉬기 어렵게 되요.

게다가 계속된 출혈과 탈수 때문에 엄청난 갈증까지 겪게 되죠.

말 그대로 죽고 싶어도 죽지 못 하는 끔찍한 고통일 거에요.

예슈아가 십자가에 매달려 있을 때 누군가가 쓸개즙을 섞은 포도주를 줬는데,

이건 통증을 완화시키기 위한 마취제라는 설이 있어요.

예슈아는 그것마저 거부하고 고통을 전부 감내했지만요.

 

이 형은 고대 이집트, 페니키아, 페르시아에서 유행했다가 그리스, 로마 제국으로 전파되었다고 해요.

로마 제국에서는 이것이 반역을 저지르거나 주인을 죽인 노예에게 적용되는 극형이었어요.

하극상의 대가로 과정부터 결과까지 끔찍한 형벌이지만,

수많은 사람들에게 전시되는 불명예스러운 형벌이기도 했어요.

우리나라에 있었던 효수(참수 후 목을 저자에 전시하는 형벌)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어요.

이것은 사형수 본인에게도 끔찍한 고통과 치욕이었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보내는 일종의 경고이기도 했죠.

'주인(로마 제국)의 권위에 도전하는 자는 이렇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예슈아가 이런 끔찍한 형벌을 당하게 된 것은 왜일까요?

예슈아를 증오했던 것은 로마 제국이 아니라,

예후다 민족의 기득권층이었어요.

그렇다면 예후다식 처형인 투석형(땅에 묻어놓고 뭉개져 죽을 때까지 돌을 던지는 것)으로

집행되었어야 정상적이지 않았을까요?

예후다의 권력자들은 예슈아를 신성모독으로 죽이려고 했지만,

종교 관련 범죄를 관할하는 산헤드린에는 사형을 내릴 권한은 없었어요.

그래서 예슈아를 정치범으로 몰아서 총독인 폰티우스 필라투스에게 넘겼던 것이죠.

하지만 필라투스는 예슈아에게서 정치적인 문제를 전혀 발견할 수 없었어요.

그러자 예후다의 권력자들은 총독인 필라투스의 입지를 위협했죠.

"당신은 황제의 충신이 아닌 것인가?"

필라투스는 잘못하여 예후다 민족의 폭동이 일어날 경우,

자신의 정치적 입지가 위태로워 지는 것을 걱정해서 결국 사형을 결정해요.

 

이 사건은 흥미로운 점이 있어요.

예슈아가 예후다식 형벌이 아닌 로마식 형벌로 사형을 당했다는 점이죠.

예슈아는 구원을 위해서는 자신이 죽어야 한다는 점을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구원의 대상이 예후다 뿐만 아니라 로마를 넘어 모든 인류였죠.

만약 예슈아가 끝끝내 예후다식 처형으로 돌에 맞아 죽었다면,

예슈아의 모든 행적은 작은 기록으로 남거나 잊혀졌을 가능성이 높아요.

하지만 당시 세계의 중심이었던 로마 제국의 사형으로 죽었기 때문에,

이것은 꽤 파격적인 사건으로 퍼지게 되었죠.

 

또한 정치범으로 죽어야 했기 때문에 필라투스는 예슈아의 죄명을

'예후다의 왕'으로 지정하여 사형을 집행했어요.

그것도 히브리어, 그리스어, 라틴어 3개국어로 누구나 알 수 있게

친절하고 확실하게 십자가에 표시했어요.

예후다의 권력자들이 '자칭'으로 고치라고 난리를 쳤지만,

끝끝내 예슈아는 '예후다의 왕'으로 숨을 거두게 되었어요.

민족주의가 강한 예후다에서 예언의 왕을 기다리면서,

과격한 독립운동을 하고 있는 것을 로마 사람들은 알고 있었어요.

'예후다의 왕'이라는 말처럼 그들에게 기억되기 좋은 말은 없죠.

 

십자가는 예슈아를 잊혀지게 만들려는 장치가 아니에요.

잊혀지게 만들려고 했다면 투석형으로 묻어 버렸겠죠.

오히려 십자가는 예슈아를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기는 장치였어요.

그리고 구원의 대상이 예후다가 아니라 모든 인류라는 것을 의미하는 장치에요.

그 끔찍한 고통도 감수한 예슈아의 사랑을 의미하는 장치에요.

마지막으로 예슈아야말로 예후다 민족이 기다렸던 진정한 왕이라는 것을 드러내는 장치에요.

 

정말로 십자가의 길을 원한다면,

그 숭고한 고통과 희생의 길을 원한다면,

그 팻말에 어떤 명칭으로 표기되길 원하나요?

'[용]서의 생각 > 삶 돌아보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치유의 의미  (0) 2020.06.10
방언과 예언  (0) 2020.06.03
긍휼은 사랑의 실천  (0) 2020.05.20
정경과 제2경전  (0) 2020.05.13
두 죄수의 꿈  (0) 2020.05.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