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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의 생각/삶 돌아보기

두 죄수의 꿈

성경에서는 예슈아가 십자가에 매달릴 때,

다른 두 죄수가 예슈아의 양쪽에 매달렸다고 나와요.

한 명은 예슈아를 비난했고,

다른 한 명은 예슈아를 옹호하며 자신을 기억해 달라고 부탁했죠.

예슈아는 자신을 옹호한 죄수에게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라고 약속했어요.

 

이 이야기는 굉장히 유명한 이야기이지만,

정작 우리는 그들의 입장을 깊게 고민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저 둘은 바로 우리들을 대변하고 있거든요.

 

흔히 한국어 성경에서 강도로 표현한 이 사람들은 원어에서는 조금 다르게 표현하고 있어요.

흔히 도둑이나 노상강도 같은 사람들을 αρπακτηρ(하르팍테르)라고 해요.

하지만 마타이는 이들을 λησται(레스타이)라고 하고 있어요.

레스타이는 강도도 맞지만, 해적이나 게릴라라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어요.

레지스탕스의 원어가 되는 단어로 혁명가의 개념도 포함하고 있죠.

루카는 이들을 κακουργους(카쿠르고스)라고 하고 있어요.

카쿠르고스는 범죄자를 의미해요.

이 사람이 강도인지, 혁명가인지가 무슨 중요한 의미가 있을까요?

 

십자가형이 어떤 형벌인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어요.

십자가형은 고대 로마 제국에서 내려지는 극형 중 하나에요.

단순 범죄자가 아니라 국가전복을 꾸민 반란주동자나

주인을 살해한 노예 등 심각한 하극상을 벌인 죄수를 처형하는 방식이에요.

하극상의 본보기를 보이기 위해 즉결 처형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서서히 말라 죽게 만들면서 그 모습을 전시하여

시민들에게 하극상에 대한 경고를 하는 것이죠.

우리나라로 치면 조선의 효수(참수한 목을 거리에 전시하는 형벌)와 비슷한 개념이에요.

예슈아가 십자가형을 받게 된 죄명은 '예후다 사람들의 왕'으로,

로마 제국에 도전한 반역자로 처형 당한 것이에요.

그렇다면 이 두 사람도 조금은 다르게 보이겠죠?

 

아마 이 두 사람은 로마 제국에 대항했던 과격한 예후다 민족주의자인 젤롯(열심당)이었을 가능성이 높아요.

예후다 사람들은 로마 제국으로부터 자신들을 해방시켜 줄 구원자(마쉬아흐)를 기다렸어요.

언젠가 마쉬아흐가 제국들을 무너뜨리고 재건할 이스라엘 왕국의 꿈,

그것은 예후다 사람들이 긴 세월동안 민족성을 지킬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죠.

하지만 마쉬아흐라면서 등장한 예슈아는 정치적 행보를 전혀 보이지 않았어요.

오히려 로마도(전세계도) 구원의 대상이라는 식으로 납득할 수 없는 말 뿐이었죠.

예슈아는 모든 사람들을 싸륵스로부터 구원하려고 했어요.

위대한 독립국가 이스라엘은 예슈아의 관심사가 아니었고,

오히려 비판하며 회개를 촉구했어요.

 

그래서 예후다 사람들은 예슈아에게 배신감과 분노를 느낄 수밖에 없었죠.

사두카이는 로마 제국의 앞잡이였던 자신들의 치부가 드러난 것에 분노했어요.

파리사이는 자신들이 지켜온 전통을 부정당한 것에 분노했어요.

젤롯은 이스라엘 독립 운동의 영웅이 아닌 마쉬아흐에게 배신감을 느꼈죠.

예후다를 대표하는 모든 종파들에게 적이 되고 만 거에요.

특히 로마 제국에 맞서 독립의 꿈을 이루기 위해 싸웠다가 십자가에 매달린 죄수들은 어떤 기분이었을까요?

 

한 명은 이스라엘 독립 국가의 비전을 이루지 못하고 가짜 마쉬아흐에게 속았다고 생각했을 거에요.

한 명은 이스라엘 독립은 허무한 꿈일 뿐이고, 진정한 의미의 구원은 다르다고 생각했을 거에요.

그래서 예슈아를 진정한 마쉬아흐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그 깨달음의 결과는 예슈아와 함께 낙원에 있게 되는 것이었어요.

 

이 두 죄수의 꿈은 우리들의 꿈과 비슷해요.

우리는 삶 속에서 이루고 싶은 꿈이 있어요.

하지만 하늘의 통치가 이뤄지고, 약속의 결실을 보고 싶은 꿈도 있죠.

인생이라는 십자가에 매달려 있는 우리들.

세상 속의 행복을 꿈꾸고 있나요?

하나님 속의 행복을 꿈꾸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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