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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의 생각/삶 돌아보기

방언과 예언

예전 교회에서는 방언(方言)을 굉장히 강조했어요.

성령의 은사이기 때문에 방언의 가능여부가,

성령을 받은 증거라고 가르쳤었죠.

방언은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로 기도하는 것이었어요.

심지어는 수련회 마지막날 밤인 '은혜의 시간'에는,

방언을 못하면 자러 가는 것도 허락되지 않을 정도였어요.

유감스럽게도 저는 아직도 그 방언 기도는 하지 못해요.

대체 그 방언이 무엇인지 항상 궁금했어요.

 

방언은 그리스어로 글롯사(γλωσσα)라고 해요.

말이나 언어를 의미하죠.

처음 방언이 나오는 부분은 사도행전의 오순절 사건이에요.

일행이 한 곳에 모였더니 갑자기 성령이 가득해 지면서,

각 지방의 언어로 말하기 시작했다는 것이었죠.

흥미로운 사실은 이들이 방언으로 기도를 했다는 말은 없어요.

그 당시 로마의 여러 지방에서 온 사람들이 모여 있었는데,

그들 각자의 언어로 말하는 것을 알아듣고는 신기해 했지요.

'하나님의 큰 일들'을 말한다는 것은 단순히 기도로 정의하기는 어려워요.

다양한 종교관을 가진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는 설교였을 지도 몰라요.

 

방언이 언급된 다른 책은 파울로스의 고린도전서이죠.

하지만 파울로스는 이 책에서 방언을 강조하지는 않았어요.

"여러분이 방언을 하길 원하지만, 그보다는 예언을 하길 더 원합니다."

이 말을 하기 전에 예언하기를 간절히 구하라고까지 말하죠.

방언을 자신에게 이롭고, 예언은 교회를 이롭게 하기 때문이죠.

남들이 알아듣지 못할 말보다는, 사람을 일으켜 세워주는

격려와 위로가 더욱 가치 있다는 말이었어요.

마치 예언은 방언의 반대개념인 것처럼 느껴지네요.

 

예언은 그리스어로 프로페테이아(προφητεία)라고 해요.

예언이나 예시 등을 의미하는데 조금 어색하게 느껴지죠?

미래를 예견하는 등의 주술적인 느낌이 들 수도 있어요.

이것은 원래 히브리어 네부아(נבואה)를 그리스어로 번역하여 이런 의미가 되었죠.

네부아는 신의 말씀을 대신 전한다는 의미가 있는데,

그리스 신화의 신탁과 같은 느낌이다 보니 프로페테이아가 사용된 것이죠.

굳이 우리에게 적응하기 쉬운 말이라면 예언보다는 대변, 대언이 더 가까울 거에요.

 

쉽게 말해 방언은 하나님께 영으로 말하는 것,

예언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에게 말하는 것.

이렇게 생각하면 보다 이해하기 편할 것 같아요.

성경에서 영은 사람의 영이 아니라 성령을 말하는 것이니,

결국 방언은 성령이 하나님에게 말하는 것이라는 의미죠.

과연 성령이 하나님에게 비밀로 말하는 것이,

알아듣지 못할 소리를 우리가 육성으로 내는 것인지는 저는 모르겠어요.

 

파울로스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은 허공에 대고 하는 말과 같다고 했어요.

방언할 수 있는 사람은 통역도 할 수 있게 되기를 기도하라고 했어요.

통역할 사람이 없다면 교회에서는 조용히 하고,

자신과 하나님에게만 말하라고 당부하기도 했지요.

저는 이것이 '외지인들이 많은 교회에서,

원활한 이해를 위한 통역도 가능하면 좋겠다'는 말로 느껴져요.

적어도 큰 소리로 의미를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는 퍼포먼스성 기도라고는 느껴지지 않아요.

 

파울로스는 자신이 교회 사람들보다 더 많은 방언을 하지만,

방언으로 만마디 말하는 것보다 깨달은 이성으로 5마디 말하기를 원한다고 했어요.

결국 자신과 하나님의 관계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에게 올바르게 전하는 것이 더욱 가치 있다고 판단되요.

우리가 예배당에 모이는 이유는 혼자 기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하기 위해서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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