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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의 생각/삶 돌아보기

언약은 의무가 아닌 변화

우리의 믿음은 언약의 성취에 근본을 둬요.

하지만 그 믿음은 의무의 성격이 다소 강하다고 할 수 있어요.

과연 언약은 무엇이고, 믿음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말하는 믿음은 고대 그리스어로는 πιστις(피스티스)라고 해요.

이것은 거래관계에서 이루어지는 일종의 '신용'과 같은 개념이에요.

신용이라고 한다면 그 계약관계가 정상적으로 이행되고 있다는 전제조건이 필요한 거죠.

그래서 야아콥은 '행함(실천)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라고 말한 것이죠.

언약은 διαθήκη(디아테케)라고 해요.

이것은 합의, 또는 계약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어요.

계약이라면 쌍방의 상호 조건이 필요할 텐데, 하나님과 우리의 조건은 각각 무엇일까요?

 

첫 번째 계약은 아담과의 계약이었어요.

  1. 에덴의 모든 나무 열매는 먹어도 괜찮다.
  2.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먹으면 안된다.

계약에 대한 대가는 이랬어요.

  1.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먹으면)죽을 것이다.

하지만 아담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먹었고,

에덴에서 쫓겨나 더는 생명 나무 열매를 먹을 수 없게 되었어요.

즉, 이제는 필연적으로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 된 것이죠.

아담을 통해 선악을 알게 된 인류는 점점 악한 성향을 띄게 되었고,

바벨탑 사건으로 그 정점을 찍게 되었죠.

하나님은 대홍수를 일으켜 노아 일가를 제외한 인류를 멸망시켰어요.

새롭게 시작된 인류를 위해서는 이전과 다른 계약이 필요했어요.

 

두 번째 계약은 아브라함과의 계약이었어요.

  1. 너의 고향을 떠나 내가 지시하는 땅으로 떠나라.

조건은 이 한 가지 뿐이었지만, 대가는 많았어요.

  1. 너는 큰 민족을 이루게 된다.
  2. 너는 복의 근본이 될 것이다.
  3. 땅의 모든 민족이 너를 통해 복을 얻을 것이다.

아브라함은 그 약속의 땅이 어디인지도 모르면서,

그 내용을 신용하고 따랐어요.(히11:8~9)

자기 고향과 가족(집단)을 떠났다는 것은,

자신의 생활 기반과 가치관에서 벗어났다는 의미이기도 해요.

하나님은 그 믿음을 의롭다고 여겼어요.(창15:6)

즉, 그 계약 안에서 하나님이 이끄시는 대로 따르는 삶.

기존의 싸륵스에서 벗어나 변화된 삶을 이루는 그것이 신앙생활인 것이죠.

유감스럽게도 아브라함은 이 계약의 결과를 보지는 못 했어요.

하지만 이츠학과 야아콥, 요세프 등의 자손에게로 계속 이어지게 되죠.

그들의 후손들이 이집트로 들어간 후, 이 계약은 점점 희미해 지게 되요.

 

이후, 모셰에게 준 계약으로 이것은 보다 체계화되요.

하나님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이집트에서 사막으로 이끌어 냈어요.

이집트 영향 밑에서의 생활 기반과 가치관을 버리고 떠나게 한 것이죠.

완전한 하나님과의 관계는, 싸륵스에서 벗어나는 것을 전제로 해요.

이집트에서 벗어나기 위해 열 가지 재앙이 일어나게 되요.

유월절은 바로 이집트에서 벗어난 것을 기념한 명절이에요.

그렇게 이집트에서 벗어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석판에 새긴 교훈을 주었어요.

그 대가는 다음과 같아요.(출19:5~6)

  1. 내가 선택한 백성이 된다.
  2. 너희 나라는 나를 섬기는 제사장 나라가 된다.
  3. 너희는 거룩한 민족이 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옛 언약(Παλαιά Διαθήκη:팔라이아 디아테케)'이에요.

그것은 석판에 새겨진 문자 그대로 이행해야 하는 계약이었어요.

하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것을 이행하지 못했어요.

이방신 숭배, 기득권층의 부패, 각종 사회문제를 야기한 이스라엘은,

결국 민족이 분열되고 멸망하여 여러 강대국의 지배를 받게 되죠.

구약의 예언자들은 대부분 이 계약이 이행되지 않았기 때문에 심판이 있을 것을 예언했어요.

하지만 회복에 대한 약속으로 마치는 공통점이 있었죠.

예헤즈켈은 새로운 마음새로운 영을 주어 이 계약을 이행하게 하겠다고 예언했어요.

하나님은 "그 때에 너희는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죠.

이것은 신약이 되어서 비로소 이루어지게 되요.

 

긴 세월이 흐르고 드디어 예슈아가 이 땅에 오게 되요.

이스라엘 사람들은 옛날에 이집트 지배하에서 벗어났듯이,

로마 지배하에서 벗어나는 것을 꿈 꿨어요.

하지만 예슈아에게는 로마도 구원의 대상이었어요.

벗어나야 할 대상은 바로 로마가 아닌 죄성(싸륵스)이었던 것이죠.

이 싸륵스에서 벗어나기 위해 예슈아의 십자가 처형이 이루어 져요.

공교롭게도 이 직전에 유월절 만찬을 가지게 되요.

여기서 예슈아는 술잔을 나누며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Καινή Διαθήκη:카이네 디아테케)이다"라고 말했어요.(눅22:20)

성찬은 바로 새 언약이 체결된 것을 기념하는 행사였던 것이죠.

새 언약은 인격이 완전히 변해야 이루어 지는 것이었어요.

이 변화는 오순절에 성령 강림으로 이루어 지게 되요.

성령을 받은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이 되고,

하나님이 그 안에서 계약을 이행하게 되었죠.

하나님은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고 말했어요.(히8:10)

 

옛 언약과 새 언약의 목적은 기본적으로는 같아요.

하지만 그 이행방식은 완전히 달라지게 되죠.

옛 언약은 석판에 기록된 문자대로 우리가 이행해야 했던 의무였어요.

하지만 새 언약은 우리의 생각과 마음에 기록된 대로 하나님이 이행하는 것이에요.(고후6:16)

파울로스는 "토라는 죽이는 것이고, 프뉴마(성령)는 살리는 것"이라고 말했어요.(고후3:6)

새 언약이 우리에게 어떻게 적용되는 지를 잘 설명해준 것이죠.

 

페트로는 "너희는 선택된 민족이고, 왕 같은 제사장들이고, 거룩한 나라이고, 그 분의 백성"이라고 말해요.(벧전2:9)

이것은 하나님과의 계약이 이루어 졌다는 의미에요.

모셰에게 이렇게 될 것이라고 한 내용들이 이 안에 전부 포함되어 있거든요.

"그의 신비한 빛에 들어가게 하다"라는 말은 바로 성령을 의미해요.

결국 성령을 통한 완전한 인격 변화,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이 바로 계약이 이루어지는 조건이었던 것이죠.

 

우리는 이루기 어려운 의무 속에서 괴로워 하고 있는지,

성령으로 변화되어 하나님과 자연스럽게 살아가고 있는지,

한 번쯤 스스로를 돌아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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