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키(מלאכי:나의 사자)라는 이름에 대해서는
지금도 말이 많아요.
인명이라기보다는 누군가를 지칭하는 듯한
느낌이 있기 때문에, 그 당시 사람인 에즈라가
아닐까 하는 견해도 있지요.
마지막 예언자인 말라키는 회개를 요구하며,
심판에 대해 강하게 표현해요.
당시 사회의 대표적인 문제들인 사제들의
횡령과 이혼 문제, 혼혈가정으로 인한 신앙의
상실 등을 조목조목 짚으며 경고하죠.
그러면서도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 지를
반드시 기재하고 있어요.
이스라엘은 어찌보면 적반하장과 안하무인의
태도를 보여주고 있기도 해요.
하나님께서 "내가 너희를 사랑한다"라고 하자,
그들은 "어떻게 사랑하셨는데요?"라고
따지듯이 되묻고 있었죠.(1:2)
그들은 하나님께서 "이러하다"라고 경고하면,
"우리가 '어떻게' 그랬겠어요?"라고 따졌죠.
그들은 신앙도 저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면서도 하나님께 자비를 구했어요.
말라키는 경고로 예언을 시작하면서,
동시에 경고로 예언을 마쳤어요.
그 사이에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신다는
점을 반드시 표현했죠.
즉, 그들에게 회개하고 돌아오라는 강한
요구였던 것이에요.
당시 그들은 부족한 게 없었어요.
그랬기 때문에 의식적으로만 하나님을 찾을
뿐이었지, 행동은 완전히 타락했었죠.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어중간하면서
불성실한 모습은 라오디케아 교회와도 같죠.
하나님의 말씀에 '어떻게?'라는 질문이 무슨
의미를 가질까요?
'어떻게?'라는 수단에 집착할 때,
'왜?'라는 목적을 상실하곤 해요.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에 '왜?'가 담겨 있으니
그대로 따르는 것이야말로, 그 분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가져야 할 태도 아니었을까요?
'[사]랑의 말씀 > 말씀 뜯어보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유대교의 3대 종파 (0) | 2020.01.09 |
---|---|
마카베오기(마카베온) (0) | 2020.01.02 |
스가랴(셰페르 즈카르야) (0) | 2019.12.20 |
학개(셰페르 하까이) (0) | 2019.12.12 |
스바냐(셰페르 츠판야) (0) | 2019.12.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