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신약성경에서 유대교의 여러 종파를 발견할 수 있어요.
바리새인, 사두개인, 열심당 등.
하지만 구약에서 보이지 않던 이들이 어디서 갑자기 나타난 것인지 왜 있는 것인지,
그리고 어떤 사람들인지 알기는 어렵죠.
하지만 이들을 제외하고 신약의 세계관을 이해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거든요.
그래서 대표적인 종파에 대해 가볍게 소개를 해보려고 해요.
바리새인은 그리스어로는 파라사이오스(Φαρισαῖος)라고 해요.
히브리어 파루쉬(הפרושים:분리된)에서 파생된 말이라고 하죠.
이들은 문자로 된 토라가 아니라,
구전으로 토라를 전하며 자신들만의 전통을 만들고 그것을 철저히 지켰어요.
사두개인은 그리스어로 사두카이오스(Σαδδουκαῖος)라고 해요.
대사제 가문인 자독 가문에서 비롯되었어요.
이들은 철저하게 문자로 기록된 토라를 중시하면서,
토라에 언급되지 않는 영적 세계는 절대 인정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에세네인은 그리스어로 에세노이(Ἐσσηνοί:신성한, 경건한)라고 하죠.
순수한 신앙을 지키기 위해, 속세와의 관계를 끊고 사막에 숨어지낸 사람들이에요.
이 종파들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역사를 알아볼 필요가 있겠죠?
신구약 중간기의 셀레우코스 왕조의 안티오코스 4세는
유대교 말살 정책으로 유대인들의 반발을 샀었죠.
그 뒤를 이어 왕이 된 안티오코스 5세는 이 정책을 완화시켰어요.
자독 가문도 아니면서 뇌물로 대사제가 된 메넬라오스를 경질하고,
자독 가문의 알키모스를 대사제로 임명했어요.
문제는 이 알키모스가 자독 가문이면서도,
헬레니즘 문화에 심취하여 유대교의 순수한 신앙을 지키지 못한 것이었죠.
순수한 신앙을 고수했던 경건한 유대인,
이른바 하시딤들은 이 일에 반발했어요.
이후, 혁명가 마카비의 동생인 요나단이 자독 가문 사람이 아니면서도
스스로 왕이자 대사제가 되고자 했어요.
여기서도 많은 반발이 일어났어요.
거기에 이어 시몬도 스스로 왕이면서 대사제를 겸하는 일이 발생하자
결국은 하시딤들은 크게 반발하며 분열되요.
1. 사두개인의 등장
자독 가문의 정통성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셀레우코스 왕조가 임명한 사람이라고 해도 자독 가문의 사람이라면 문제될 게 없다.
그들은 혈통의 정당성과 토라의 기록을 중시하며 사두카이, 즉 사두개인이 되요.
이들은 정통성은 자독과 토라(기록)에 있다며
토라에 기록되지 않은 영혼과 내세는 철저히 배척했어요.
신약시대에도 대사제 등의 고위직은 이 사두개인이 독점하게 되요.
이들은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활동해요.
2. 바리새인의 등장
독실하고 경건하다면 누구라도 정통성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이들은 주로 평민 출신의 학자들이었죠.
평민들에게 말씀을 전하기 위해, 기록이 아닌 구전으로 토라를 전달했어요.
이들은 토라에서 충족되지 않는 규율들을 자신들이 추가하며 전통으로 삼았어요.
이들은 파리사이, 즉 바리새인이 되었죠.
전통을 철저히 지키는 것을 중시했어요.
일반 시민들을 가르치는 교사나 학자들의 상당수는 이 바리새인이었다고 해요.
서기관이라고 하는 율법학자들의 상당수도 바리새인 출신이 많았다고 하네요.
이들은 평신도의 회당을 중심으로 활동해요.
3. 에세네인의 등장
독실하고 경건한 자독 가문의 진정한 대사제가 아니면
아무도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이들은 마쉬아흐를 기다리며, 사막에 들어가 세속과 연을 끊고 금욕적인 삶을 살았어요.
이들은 에세노이, 즉 에세네인이 되었어요.
금욕으로 자신들만의 신앙을 지키고자 했죠.
사막에서 금욕적인 삶을 보낸 침례자 요한이나 예수도
이 에세노이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해요.
그리고 이들이 사막의 여러 동굴에 소중히 감추어둔 성경 사본들은
사해문서 등으로 발견되어 지금도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죠.
이들 외에도 급진적인 민족주의 혁명파인 젤롯인(셀롯당, 열심당)도 있었지만
로마와의 전쟁에서 패망하여 사라졌어요.
사두개인도 로마인의 침공에 멸망당했죠.
에세네인은 사막에서 서서히 사라져 갔어요.
바리새인은 지금의 유대교로 이어졌어요.
이 종파들은 탄생한 배경으로 인해 각자의 특징을 가지게 되었고,
그 한계를 이기지 못해 도태되고 말았어요.
어쩌면 이들이 보인 한계는,
현대 교회들의 한계와 같았을 지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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