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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의 생각/삶 돌아보기

치유의 의미

어떻게 교회에 다니게 되었나요?

누군가의 전도로 다니게 되는 경우도 있고,

부모님이 다니셔서 같이 다니게 되는 경우도 있죠.

예전에는 부흥집회가 많아서 거기서 다니기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모든 교회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치유의 은사'라는 것으로,

많은 사람들의 병을 치료하고 명성을 얻는 경우도 적지 않았죠.

그 목사들이 치유의 은사를 내세우는 근거는 말라기에 있었어요.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말라기 4장2절에 있는 이 구절을 근거로,

마치 주술 같은 퍼포먼스로 치료의 기적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었죠.

안타까운 것은 '치료'라는 대가를 바라면서 시작된 믿음이,

또다른 대가를 바라는 기복신앙으로 변질된 것이죠.

믿음은 대가를 위한 투자가 되고 말았어요.

그리고 이 치료의 기적을 보이던 사람들은 교주가 되어,

사람들 위에 군림하여 많은 재산과 명성을 손에 쥐게 되었죠.

 

문제는 이 치료의 은사는 다소 무서운 조건을 걸고 있어요.

하나님의 이름을 경외하는 믿음이 있는 자들에게만 적용된다는 것.

즉, 치료가 되지 않으면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하나님이라는 존재가 부와 건강을 책임지는 우상이 되어 버렸어요.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요.

 

말라기의 해당 구절이 NIV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었어요.

"the sun of righteousness will rise with healing in its wings

(정의의 태양이 떠오르고 그 날개 안에서 치유 받는다.)"

일본어 성경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었어요.

"義の太陽がのぼり、その翼には、いやす力を備えている。

(의의 태양이 떠오르고, 그 날개에는 치료하는 힘을 갖추고 있다.)"

치료하는 광선이 아니라 '날개 밑에서' 치유된다고 하는군요.

히브리어로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었어요.

"שמש צדקה ומרפא בכנפיה ויצאתם

(태양이 떠오르고, 그 날개 안에서 치유된다)"

히브리어 כנפ(카나프)는 날개 또는 옷자락으로 해석될 수 있어요.

결국 어디에도 치료의 광선은 언급되지 않는군요.

우리나라 성경에서는 번역 과정에서 어떤 오해가 있었던 것 같아요.

 

과거 이스라엘의 역사를 생각해 보면,

수많은 나라의 압제에 시달렸던 이스라엘을 볼 수 있죠.

정의의 태양이 떠오른다는 것은 하나님의 정의가 바로 서는 것.

올람 하바의 소망이 담겨 있는 말이에요.

그 날개에서 치유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보호 속에서,

이스라엘(믿는 사람들)이 회복된다는 의미가 담겨 있죠.

하나님의 통치가 이뤄지는 다가올 시대의 소망.

그리고 성령을 통해 얻는 위로와 확신.

이것은 왜 우리가 경건을 이루어야 하는지 설명하는 것이었어요.

 

성경은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을 말하고 있어요.

주술적인 퍼포먼스, 세상의 부와 명예, 건강...

성경 전체를 통틀어 주의하고 있는 부분이잖아요.

우리가 어떻게 교회를 다니게 되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그러면 왜 우리가 교회를 다니고 있는지 자신의 목적도 돌아볼 수 있을 거에요.

그것이 이 세상의 헛된 복은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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