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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의 생각/인물 돌아보기

아브샬롬, 아버지의 죄악

다비드는 왕이 되어서도 여전히 다사다난한 세월을 보내야 했어요.

그의 나라는 그를 인정하지 않는 무리들이 있어서 항상 분열되어 있었고요.

아브샬롬(אבשלום:아버지는 평화)은 그 이름과 달리 다비드 일생에 최악의 위기를 주었어요.

 

다비드가 충신 우리야의 아내와 불륜하고,

우리야를 격전지로 보내 죽이기까지 했어요.

예언자 나탄은 다비드를 비난하며,

백주대낮에 다비드의 아내들이 강간당할 것이고

그 집안에 칼이 떠나지  않는다는 예언을 남겼어요.

 

그후, 아브샬롬의 누이인 타마르가 이복형인 암논에게 강간 당하는 사건이 일어났어요.

그러고는 타마르를 아내로 맞이하지 않고 바로 쫓아내 버렸죠.

다비드는 이 이야기를 듣고 화만 낼 뿐,

암논을 처벌하거나 조치를 취한 게 없었어요.

심지어는 피해자인 타마르에게도 도움을 준 게 없었기 때문에 그녀는 처량해 졌죠.

 

누이를 아꼈던 아브샬롬은 아버지가 아무 해결도 하지 않고 방관하자

속으로만 화를 삭혀야 했어요.

아버지가 신하의 아내와 불륜을 저지른 것도 암암리에 다 알려진 것이었고,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고 암논은 자기 누이를 건드린 것인데

아무 처벌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이 기가 막힌 것이죠.

2년 뒤, 파티를 열어서 암논을 불렀고 부하들을 시켜 그를 살해해 버렸어요.

그리고 외할아버지의 나라인 그슈르로 도망쳐서 3년을 지내게 되었어요.

 

다비드는 자신이 타마르의 사건에 방관했다가 일이 커졌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동족상잔의 죄악을 마냥 용서할 수는 없었고,

또 방관만 하고 있었어요.

다비드의 조카인 요압은 왕위계승자가 다른 나라에 망명하는 것이 좋지 않다고 여겼어요.

그는 다비드를 설득하여 아브샬롬을 귀국할 수 있게 했어요.

다비드는 귀국은 허락하지만 왕궁에 입궁은 금지 시켰어요.

왕위계승 후보자가 입궁도 못 한다는 것은 정치적 생명이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였죠.

아브샬롬은 요압에게 왕을 알현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하고,

결국 다비드와 아브샬롬은 극적으로 화해가게 되었죠.

 

하지만 아브샬롬은 흑심을 품고,

왕의 권한인 재판을 스스로 진행하며 민심을 얻었어요.

당시 다비드의 정치기반인 예후다 가문은,

다비드가 이스라엘 통합을 위해 다른 가문에 유화정책을 펴는 동안 다소 소외 되었어요.

예후다 가문의 민족주의자들이 불만을 터뜨리고 있을 때 아브샬롬이 나타난 것이었죠.

놀랍게도 아브샬롬의 반역은 예후다 가문을 기반으로 일어나게 되었어요.

다비드는 도주했고, 아브샬롬은 예루샬라임을 정복하고 다비드의 아내들을 강간했어요.

 

다비드는 후샤이를 첩자로 보내, 아브샬롬을 기만하여 군대를 정비할 시간을 벌었어요.

다비드는 요압을 비롯한 역전의 용사들을 보내어 반란군을 토벌했고,

아브샬롬은 도망가다가 상수리나무에 걸려 요압에게 살해당하고 말아요.

다비드는 반란군의 수괴였어도 자신의 혈육인 아브샬롬을 죽일 수 없었어요.

하지만 요압은 이번에도 얼렁뚱땅 넘어가면 다음은 없다는 위기감을 느꼈죠.

아브샬롬을 죽인 뒤, 시체를 구덩이에 던지고 돌무더기를 쌓아 버렸어요.

시체 위에 돌무더기를 쌓는 것은 이스라엘에서 굉장한 저주의 상징이었죠.

 

이 사실을 안 다비드는 통곡을 했죠.

"내 아들아, 내가 네 대신 죽었어야 했다."

그는 이 모든 일들이 우리야의 가정을 파탄 낸 자신의 죄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고 있었어요.

다비드의 자식들은 상당수가 끝이 안 좋았죠.

장남 암논은 누이를 강간한 뒤 살해당하고,

삼남 아브샬롬을 반란자가 되어 살해당하고,

사남 아도니야도 반역 혐의로 처형당하고,

쉴로모는 말년에 우상숭배에 빠지고 말죠.

어쩌면 아버지의 죄악의 결과가 자식들에게 나타났던 것일지도 몰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