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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의 생각/인물 돌아보기

아비샤이, 정의를 가로막은 우애

어떠한 형태든 사랑은 아름다운 것이지요.

요즘처럼 각박한 시대에 형제애, 또는 가족애라는 것이 얼마나 가치있는 것인지는 말할 필요도 없고요.

다만, 비뚫어진 사람에게 가지는 무분별한 애착과 복종은 안 좋은 결과를 낳기도 해요.

아비샤이(אֲבִישַׁ֔י:아버지는 이샤이)는 아사헬과 더불어 요압의 동생이었어요.

뛰어난 전략가였던 요압과 달리 아비샤이는 아사헬과 더불어 다비드 휘하 최고의 맹장이기도 했죠.

이 형제들의 우애는 성경 전체를 통틀어서 손 꼽힐 만큼 각별했어요.

 

다만, 형인 요압을 맹목적으로 따랐죠.

그는 충동적이고 다혈질적이었어요.

다비드가 샤울에게 쫓길 때에,

다비드는 샤울을 죽이고 싶어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아비샤이가 굉장한 적개심을 가지고 죽이려 했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말려야 했죠.

아비샤이는 다비드의 최측근으로 그에게 충성스러운 부하였던 것은 확실해요.

하지만 그보다 형인 요압을 더욱 따랐어요.

 

형제인 아사헬이 아브넬에게 살해당했을 때,

누구보다도 복수심에 불탔던 게 아비샤이였죠.

그는 다비드가 아브넬의 항복을 받아들였지만,

여전히 그를 복수의 대상으로 바라봤어요.

때문에 요압이 비열하게 아브넬을 불러 암살할 때도 함께했죠.

다비드에게 충성스러운 부하였다지만,

다비드와 반대 입장인 요압과 함께하는 일이 많았고,

그건 많은 문제를 야기했어요.

 

어떻게 보면 굉장히 모순적인 인물이기도 해요.

다비드를 위해 목숨을 걸고 그를 지키면서도,

다비드의 정치적 입지를 위협하는 요압의 행동에는 반대없이 함께했죠.

이스라엘을 아우르려는 다비드와 반대로,

요압은 극단적인 혈통주의자였어요.

그는 예후다 가문이 주도권을 잡는 것에 집착했고 아비샤이는 철저히 그를 따랐어요.

이것은 다른 이스라엘 가문들의 반발을 사게 되었고,

다비드의 정치적 입지를 흔들었죠.

 

셰바의 반란을 진압할 때에 아마사가 군대소집도 못하는 지경에 이르자,

다비드는 아비샤이를 그 자리에 임명했어요.

적어도 다비드는 아비샤이의 충성심과 역량을 믿고 있었죠.

아비샤이는 여기서 실각한 요압을 자기 멋대로 복직시키는 만행을 저질러요.

결과적으로는 반란 진압에 성공하지만,

힘겹게 끌어내린 다비드의 정적을 되살려 놓은 것 밖에 되지 않았죠.

다비드는 이 사건에 대해 어떤 추궁도 하지 않고 그냥 넘어갔어요.

요압의 문제만 아니라면, 아비샤이는 분명 다비드에게 충성스러운 부하였거든요.

 

요압은 다비드가 서거한 이후 숙청되었어요.

그의 자리는 브나야가 대신하게 되었지요.

아비샤이가 고령이어서 그랬는지, 이미 사망한 이후였는지 알 수는 없어요.

하지만 요압이 숙청된 이후로 아비샤이의 기록도 발견되지 않고,

심지어는 그의 일족이 활약하는 일도 발견되지 않아요.

어쩌면 다비드의 유언을 받아들인 쉴로모가 의도적으로

그들 일족을 정계에서 배제시켰을 가능성도 있어요.

어쨌든 이 충성스럽고 탁월했던 형제들의 기록은 그들 대에서 끝나고 말았어요.

 

가족애도 중요한 가치임에는 틀림 없어요.

다만, 무엇이 옳은 것인지 판단할 수 있는 지혜도 필요하죠.

옳지 못한 행동을 하는 가족을 옳은 길로 이끌어낼 수 있는 것이 삶의 지혜이죠.

성경에는 충성스러운 부하로 기록된 그이지만,

기록된 행적은 그의 충동적이고 맹목적인 성향도 여과없이 보여주고 있죠.

가족 간의 우애를 뛰어넘는 믿음과 충성.

우리 삶 속에서 올바른 것을 바라보기 위한 지혜는 그 어떤 것보다도 중요한 가치에요.

"그러므로 사람의 원수는 자기 집안 식구가 될 것이다."

(마태복음 10장36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