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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말씀/말씀 뜯어보기

요한계시록(아포칼립시스 이요안누)

성경 전체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책은 과연 어떤 내용일까요?

하나님의 말씀은 과연 어떻게 맺게 될까요?

이 책은 어떻게 보면 신앙인이 가져야 할 목표를 제시하고 있어요.

 

저자인 요하난이 복음서와 서신서를 기록한 사도 요하난과 동일인물인지는 설이 많아요.

가장 유력한 설은 사도 요하난이 바트모스 섬에 유배되었을 때 기록한 책이라는 설이죠.

이 책은 굉장히 많은 해석과 논란을 낳고 있기도 해요.

 

이 책의 원제는 Ἀποκάλυψις Ἰωάννου로 '요하난의 드러냄(계시)'라고 해석될 수 있어요.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미래까지의 일들을 기록하고 있죠.

굳이 비교하자면 구약의 느비임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책이라고 볼 수 있죠.

예사야, 이르메야, 예헤즈켈, 다니엘처럼 하나의 큰 흐름을 가지고,

다양한 비유와 환상으로 그 흐름을 묘사하고 있어요.

이 책의 주제는 '하나님의 승리를 계시'에요.

 

이 책의 내용은 다음과 같이 구분될 수 있어요.

  1. 과거 : 요하난이 본 하나님의 말씀
  2. 현재 : 일곱 교회에게 편지
  3. 미래 : 장차 있을 일의 환상

일곱 교회에게 쓴 편지는 교회의 장단점을 정리한 것으로,

현대 교회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사항들이 대부분이에요.

요하난은 일곱 교회들의 좋은 일은 칭찬하고 나쁜 일은 비판하며,

건강한 교회를 이룰 것을 당부해요.

 

이후에 이어지는 내용은 미래에 있을 환상들을 비유로 표현한 것이에요.

신비로운 환상들이 많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 의미를 관심있게 고민했죠.

일곱 봉인의 심판, 일곱 나팔의 심판, 일곱 대접의 심판...

앞의 일곱 교회의 편지와 더불어 유독 7이 많이 보이는 점도 흥미로워요.

예후다 사람들에게 7이 완전한 수인 점을 생각하면,

완전한 하나님과 그에 대비되는 완전을 가장한 악마를 의미한다고도 볼 수 있겠죠.

그리고 666과 144,000명 등 상징적인 수가 굉장히 많이 등장하는 점이 특징적이죠.

 

이 책은 신약의 중요한 요소들을 대부분 담고 있기도 해요.

예슈아의 파루시아(강림)을 중심으로,

조에 아이오니오스(시대의 삶)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정리하고,

바실레이아 톤 우라논(하나님의 통치)이 어떤 모습일지 묘사하며 소망을 심어 주죠.

 

세상에서는 기록연대가 도미티아누스 황제 시대인 점을 들어,

먼 미래를 예언하기보다는 가까운 미래의 일들을 표현했다고 하기도 해요.

실제로 666(다른 사본에는 616)을 게마트리아로 보면

네로(616이라면 칼리굴라)로 해석될 수 있거든요.

네로 황제 시기에 기독교에 대한 박해가 심했던 점을 생각하면,

이 책에서 그를 상징하는 666이 부정적으로 표현되는 것은 당연하겠죠.

그렇게 본다면 하르 메깃돈의 전쟁도 예후다 독립 전쟁과 연관이 있을 거에요.

 

저자의 기준으로 근미래의 일은 이미 역사를 통해 실현된 것을 알 수 있지만,

더욱 중요한 파루시아와 조에 아이오니오스까지는 우리 시대에서도 아직이라는 느낌이 있어요.

많은 이단들은 종말이 가깝다고 하며 그 증거로 이 책을 들고 있어요.

수많은 전쟁과 재난들을 겪을 텐데 재산이 무슨 소용이 있겠냐는 말을 하죠.

그리고 재산은 하늘에 쌓으라며 교회(자신)에게 바치라고 설득하죠.

물론 이 시대에 마치 이 책의 내용 같은 재난들이 일어나고 있는 점은 부정할 수 없어요.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공포를 주는 것이 아니에요.

이 책의 핵심도 전쟁과 재난의 공포를 깨달으라는 말이 아니에요.

우리가 천국에 가는 것은 죽어서 가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이루는 것이잖아요.

공포를 주기보다는 다가올 시대의 희망을 주는 것이죠.

 

복음서가 예슈아를 통한 새 계약의 성립을 보여주었고,

서신서는 새 계약의 결실인 경건을 이루는 과정을 보여주었어요.

이 책은 앞의 내용들의 결론을 맺으며 아직 겪지 못한 일에 소망을 심어주고 있어요.

느비임의 예언들이 마지막에 위로와 격려로 소망을 주면서 마치듯이,

이 책의 마지막도 우리에게 큰 소망을 가지게 해요.

 

"이 모든 것을 증거하신 이가 말씀하십니다.

'정말로 내가 속히 갈 것이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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