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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05월06일 주께서 나에게 안겨 주신 기쁨은 햇 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할 때에 누리는 기쁨보다 더 큽니다. 내가 편히 눕거나 잠드는 것도, 주께서 나를 평안히 쉬게 하여 주시기 때문입니다. (시편 4장 7절~8절) 부족한 중에도, 괴로운 중에도 내가 웃을 수 있는건, 나를 지켜주시는 주님 덕분입니다. 늘 평안하게 지켜주심 감사합니다
출애굽기(쉐모트:이름들) 성경 전체를 통틀어 웅장하고 극적인 드라마가 펼쳐진다면 어떨 것 같나요? 그 엄청난 드라마는 생각보다 빨리 등장하죠. 토라의 두번째 책 '쉐모트(שמות:이름들)'에요. 원어로 성경을 찾아보다 보면, 각 권의 이름부터가 우리가 아는 것과 전혀 다르다는 점에서 먼저 놀라게 되요. 우리가 출애굽기, 이집트 탈출기로 부르는 이 책의 원래 이름은 전혀 다른 이름이었지요. 중국식 가차자인 애굽을 사용한 것부터가 이미 원래의 명칭과 벗어난 부분이었죠. 이 책은 이스라엘 최고의 유명인으로 꼽히는 '모셰'가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이집트에서 탈출하여 약속의 땅으로 향하는 이야기에요. 모세가 그 약속의 땅에 도착하지는 못 하지만, 그 긴 여정 중에 하나님께서 어떻게 함께 계셨는 지 생생하게 담아내고 있죠. 사막에서의 혹..
고난 속의 평안 우리의 삶은 괴로운 일이 참 많아요. 저 역시 혼자 살면서 직장생활에 치이는 중에는 심신이 괴로울 때가 많아요. 도대체 믿는 사람인데 어째서 하나님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괴로운 삶을 살아야 할까요. 실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은 세상의 풍족함과는 거리가 멀어요. 세상에서 부족할 것이 없어 보이는 삶도 실은 숨겨진 고통 속에서 살아가요. 때로는 부족함이 없는 삶의 회의감도 무시할 수 없는 고통이라고 하죠. 아프고 가난하고 피곤하고 배고픈 주제에 기댈 곳이 없으니 하나님 타령한다고 비웃는 사람들도 있어요. 틀린 말이 아니에요. 저에게는 기댈 곳이 없어요.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주께 감사드려요. 오직 주만 바라볼 수 있는 환경을 주셨거든요. 세상 사람들의 성공은 언젠가 만날 실패, 또는 반드시 겪게 될 허무 ..
예수로 살리 예수로 살리 저의 삶은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어요. 겨우 30년 남짓을 살며, 수많은 변화들을 보고 겪어 왔죠. 때로는 세상의 모든 것들이 허무하다고 느낄 때도 있었어요. 하지만 저도 변하고, 주위도 변하고, 세상도 변해가는 동안, 하나도 변하지 않는 존재가 있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요. 그래요. 그것을 알고 저는 또 변했죠. 이제는 그 변치 않는 존재를 위해, 그 모습을 닮아가기 위해 변해가요. 지금도, 앞으로도...
2019년04월30일 주님께서는 그를 잠시 동안 천사들보다 못하게 하셨으나, 영광과 존귀로써 그에게 관을 씌우셨으며,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시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사람에게 복종시키심으로써, 그에게 복종하지 않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보기로는, 아직도 만물이 다 그에게 복종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히브리서 2장 7절~8절) 연약한 육신으로 괴로운 일이 많지만, 그 뒤에 있는 은혜를 바라봅니다. 원망보다는 감사가 더 앞서는 것, 고통 뒤의 은혜를 믿기 때문입니다.
창세기(베레시트:처음에) 무엇이든 시작은 있게 마련이죠. 우리가 창세기라고 부르는 이 책은 세상의 시작을 기술하고 있어요. '처음에(בְּרֵאשִׁית:베레시트)'라는 이름은 이 책의 첫번째 단어이기도 해요. 모세가 기록했다고 알려져 있죠. 하나님의 첫번째 말씀, '빛이 있으라(יהי אור:예히 오르)' 성경에서 정말 중요한 말씀 중 하나에요. 이후로 모든 것이 시작되거든요. 크게 다음과 같이 파트가 정리되요. 1. 세상의 시작(1장) 2. 인류의 시작(2장~5장) 3. 대홍수와 문명의 재시작(6장~10장) 4. 문명의 분열(11장) 5. 족장시대 : 아브라함과 이츠학(12장~25장) 7. 족장시대 : 야아콥(26장~28장) 8. 야아콥의 시대(28장~36장) 9. 이스라엘 민족의 성립(37장~50장) 여기서 인류 문명이 어..
친구는 신앙의 지팡이 신앙인의 친구는 누가 되어야 할까?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고민이 아닐까요? 흔히 선한 사람을 친구로 사귀어야 한다는 것은 거의 공통적으로 인정하는 부분이에요. 하지만 선하다는 기준이 무엇일까요? 신앙인에게 선한 것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신앙의 삶을 말해요. 그렇다면 우리는 신앙인만 만나서 신앙인끼리 어울려야만 하는 것일까요? 그런 결과, 교회는 좁아지고 말았어요. 크고 넓은 공간 속의 작고 좁은 모임. 뻗어나가지 않는 성도... 이것은 예슈아의 가르침과 완전히 반대에요. 예슈아는 평생을 가난한 자, 병든 자, 죄수, 주류 집단에서 소외당한 사람들과 어울렸어요. 실은 우리도 그래야 하는 것이에요. 저보다 악하고 저보다 약하고 저보다 작은 사람들이 나에게 무슨 도움이 될까? 실은 굉장히 큰 도움이 되..
Born Again Born Again 다시 태어난다는 것. 정말 애매한 말이었어요. 그리고 내 삶이 과연 나 말고 무엇이 메인이 될 수 있을까? 그 정도로 내 삶이 가치 없다면, 도대체 하나님만 있으면 되지 내가 뭐하러 살아야 하는지 의문이었어요. 그것은 제 삶을 비관적으로 만들었어요. 하지만 그게 아니었어요. 제 삶은 가치가 있었어요. 저 자신이 있었어요. 다만, 저만 있었던 게 아니었어요. 저는 주님과 함께였어요. 주님 안에 제가 있고, 제 안에 주님이 계셨어요. 그 생명으로 제가 살고 있던 거였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