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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03월09일 지식이 있는 당신이 우상의 신전에 앉아서 먹는 것을 누가 보면 양심에 거리낌이 있으면서도 용기를 얻어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을 먹지 않겠습니까? (고린도전서 8장10절) 내가 실수할 때, 내 옆사람은 그래도 되겠구나 싶어 안심하고 따라할 때가 있었어요. 내가 조심해야 하는 이유는 주위사람들에게 '신앙인은 저렇구나'라는 인식을 주기 때문이었죠.
갈라디아서(프로스 갈라타스) 원래 신앙인이었던 사람들을 가르치는 것 못지 않게 어려운 것이 바로, 새로 신앙을 시작하게 된 초신자들의 교육이죠. 파울로스는 이 초신자들을 위한 고민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이 초신자들이 제일 먼저 알아야 할 사항은 과연 어떤 것일까요? 성경을 구성하는 책들이 저자와 기록시기, 기록장소 등이 확실하지 않은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은 특히 그 부분에 의견이 많이 갈려요. 확실하지 않은 부분들은 차치하고 소개하면, 이 책의 원제는 Πρὸς Γαλάτας로 '갈라티아로 보내는 편지'로 해석될 수 있어요. 주제는 '신앙인의 자유'에요. 갈라티아는 소아시아인 아나톨리아에 있던 지역이에요. 파울로스는 바르나바와 함께 1차 선교여행을 하면서 이 갈라티아에 교회들을 세웠죠. 이 교회들의 문제는 대부분 초신자들이었고,..
천국이 무엇이길래? 우리는 천국을 바라보고 신앙생활을 해요. 하지만 바라는 것들은 상당수가 이 세상 안에서 이루어지길 바라죠. 살아가는 동안 풍족하고, 건강하고, 행복하길 원하는 마음이 정말 강해요. 천국은 단지 죽어서 가는 장소 정도로 생각하고 여기서 잘 살아야 한다고 하죠. 그 말대로 살았던 저의 삶은 괴로웠어요. 천국이 그저 멀게만 느껴졌었죠. 대체 천국이 뭐길래 이렇게 살아야 하죠? 그리스어로 성경의 천국은 'βασιλεία τῶν οὐρανῶν(바실레이아 톤 우라논)'이에요. 여기서 우라논은 '하늘', 바실레이아는 동사 βασιλευω(바실레오:다스리다)의 명사형이에요. 즉, '하늘의 다스림', '하늘의 통치' 정도로 이해할 수 있을 거에요. 성경에서 말하는 천국은 과연 이 세상과 별개의 존재인 걸까요? '천국이 ..
약할 때 강함 되시네 약할 때 강함 되시네 힘든 시기에 나에게 무엇이 힘이 되어줄까. 찬양에서의 고백은 대부분 이런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는 것 같아요. 나의 가치관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죠. 내게 큰 힘이 되는 것, 나의 가장 소중한 것. 무엇을 위해 그동안 힘낼 수 있었을까. 지금은 그 답이 확실한 것 같아요.
2020년03월02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그가 나를 사랑하니 내가 그를 구하리라. 그가 내 이름을 알았으니 내가 그를 높이 올리리라. 그가 나를 부를 것이니 내가 응답하리라. 내가 그의 고통과 함께하겠고 그를 건져 영광스럽게 하리라." (시편 91편14절~15절) 내가 주를 사랑하고, 주의 이름으로 기뻐합니다. 주께서는 항상 나를 지켜주시고, 부족한 것을 채워주셨습니다. 함께 계심을 믿으니 언제나 변함없이 주를 사랑합니다.
고린도서(프로스 코린티우스) 사람이 모이는 곳은 반드시 문제가 생기게 마련이고, 그것은 교회도 마찬가지죠. 파울로스는 각지의 교회들 중 코린토스 교회에 대한 소식을 심각하게 들었어요. 당시 코린토스는 거대한 항구도시로 수많은 상인들이 출입했던 도시였죠. 그리고 그리스 신화의 신앙이 중심이 되어서, 포세이돈을 위한 운동대회가 격년으로 열려 수많은 도시가 모이는 곳이기도 했죠.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를 섬기며 여사제만 해도 1000명에 달하기도 했어요. 그런 만큼 부도덕, 사치, 방탕이 극에 달한 도시이기도 했죠. 당시 소아시아의 에페소에 있던 파울로스는, 코린토스 교회의 문제점들을 듣고는 편지를 써서 보냈어요. 바로 우리가 아는 고린도서(πρὸς Κορινθίους:코린토스로 보내는 편지)가 그것이죠. 우리는 고린도전/후서로 두 편의 ..
하나님과의 교제 흔히 교제라고 하면 사람 간의 교제를 먼저 생각하게 되죠. 하지만 신앙 안에서 교제라고 하면 절대로 빠지면 안 되는 존재가 있잖아요. 바로 하나님과의 교제죠. 때때로 하나님과의 교제는 다소 딱딱하고 무겁게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아요. 형식을 갖춘 예배, 엄숙한 예배를 통해 하나님과의 교제가 이루어 진다고 말이죠. 실은 삶 자체가 예배가 되어야 해요. 교회에서 나와서 일상으로 돌아가서도, 하나님과의 관계는 계속되어야 해요. 기도의 형식, 찬양의 형식, 성경 읽는 형식 등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틀에 맞추려고 해요. 저것들은 실은 전부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교제에 해당되요. 우리가 친구와 대화를 나눌 때, 엄숙하고 철저한 예의를 지키며 어울리지는 않잖아요. 친근하고 가벼운 대화로 교제가 이루어 지죠. 왜..
여호와께 돌아가자 여호와께 돌아가자 사람은 절대 포기하지 못하는 것이 있죠. 동물일 수도 있고, 물건일 수도 있죠. 하지만 슬프게도 때가 지나면 사라지거나 그 가치를 잃어가게 되요. 그래서 우리는 영원한 것을 찾게 되죠. 변치 않는 것은 사랑이고들 하죠. 서로를 사랑하는 그 마음. 사람에게 쏟아붓듯, 하나님께도 그런 사랑을 쏟아부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비록 받은 사랑만큼은 아닐 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