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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의 생각/삶 돌아보기

일상에서 이루어지는 경건 경건이라는 말처럼 교회에서 많이 사용되는 말도 없을 거에요. 그런데 이 말은 일상 속에서는 흔히 접하기 어려운 말이기도 해요. 과연 교회만을 위해 정의된 말일까요? 성경에서 말하는 경건은 그리스어 ευϕσεια(에우세베이아)에요. 단어의 뉘앙스만 놓고 보자면, '신을 경외하는 태도' 정도로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흔히 하나님께 예배하는 일 자체라고 이해하는 것 같아요. 이 경건이라는 말은 신약에서는 여러 번 보이고 있어요. 이 말을 특히 강조하며 정의했던 사람으로 파울로스를 들 수 있어요. 파울로스는 티모테오에게 쓴 편지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어요. "하나님의 모든 창조물은 선하고, 감사함과 함께 취해진 것은 그 어떤 것도 하나님께 거절된 것일 수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과 만남을 통해 거룩해 ..
구원에서 구원 천국이 멀어지는 교회일 수록 신앙과 멀어지고 부도덕한 모습을 보인다는 생각이 들어요. 마찬가지로 구원의 개념도 이 현실과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비도덕적으로 변질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드네요. 현실과 신앙이 가까워 지기 위해서는 신앙의 기본 개념을 고민해 봐야 할 것 같아요. 교회에서 강조하는 두 가지가 천국과 구원. 특히 이 구원은 교회 안에서 신앙을 시작하기 위한 첫번째 단계였던 것 같아요. 때때로 이 구원을 지옥에 가지 않기 위한 수단 정도로만 생각하기도 하는 것 같아요. 그 결과는 도덕무용론으로, 비도덕적인 모습을 만들어 버리는 것이었죠. 제가 있던 교회 중에는 구원 받은 날을 생일로 지정하고 기억하라고 하는 교회도 있었어요. 언제 구원 받았는지 정의할 수 있을까요? 대체 구원이 무엇이길래 그런 걸..
천국이 무엇이길래? 우리는 천국을 바라보고 신앙생활을 해요. 하지만 바라는 것들은 상당수가 이 세상 안에서 이루어지길 바라죠. 살아가는 동안 풍족하고, 건강하고, 행복하길 원하는 마음이 정말 강해요. 천국은 단지 죽어서 가는 장소 정도로 생각하고 여기서 잘 살아야 한다고 하죠. 그 말대로 살았던 저의 삶은 괴로웠어요. 천국이 그저 멀게만 느껴졌었죠. 대체 천국이 뭐길래 이렇게 살아야 하죠? 그리스어로 성경의 천국은 'βασιλεία τῶν οὐρανῶν(바실레이아 톤 우라논)'이에요. 여기서 우라논은 '하늘', 바실레이아는 동사 βασιλευω(바실레오:다스리다)의 명사형이에요. 즉, '하늘의 다스림', '하늘의 통치' 정도로 이해할 수 있을 거에요. 성경에서 말하는 천국은 과연 이 세상과 별개의 존재인 걸까요? '천국이 ..
하나님과의 교제 흔히 교제라고 하면 사람 간의 교제를 먼저 생각하게 되죠. 하지만 신앙 안에서 교제라고 하면 절대로 빠지면 안 되는 존재가 있잖아요. 바로 하나님과의 교제죠. 때때로 하나님과의 교제는 다소 딱딱하고 무겁게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아요. 형식을 갖춘 예배, 엄숙한 예배를 통해 하나님과의 교제가 이루어 진다고 말이죠. 실은 삶 자체가 예배가 되어야 해요. 교회에서 나와서 일상으로 돌아가서도, 하나님과의 관계는 계속되어야 해요. 기도의 형식, 찬양의 형식, 성경 읽는 형식 등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틀에 맞추려고 해요. 저것들은 실은 전부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교제에 해당되요. 우리가 친구와 대화를 나눌 때, 엄숙하고 철저한 예의를 지키며 어울리지는 않잖아요. 친근하고 가벼운 대화로 교제가 이루어 지죠. 왜..
초대 교회처럼? 지금의 교회들이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고, 사람들은 그것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그러면서 '초대 교회로 돌아가자'라는 말도 심심치 않게 들리고 있죠. 대체 그 초대 교회가 무엇이길래, 그리고 그걸 외치는 사람들은 그걸 알고 잘 지켜나가고 있는 걸까요? 단순히 사도행전에서 나오는 생활공동체만 생각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 것 같아요. 왜 생활공동체가 된 것인지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요? 바로 신앙과 일상을 따로 두지 않기 위해서, 어디서나 신앙을 이어가기 위한 것이에요. 1. 생활의 공유 모여서 남녀노소 지위를 막론하고 같은 자리에 앉아 함께 식사하는 것. 마치 가족과도 같은 평화롭고 단란한 모습이 초대 교회의 모임이었어요. 서로의 생활을 이야기하며 고민들을 두고, 금전적으로 돕거나 위로해 주거나..
삶을 위협하는 유혹들 우리는 인생에서 많은 유혹을 만나게 되요. 성경의 수많은 인물들 역시 많은 유혹을 겪고, 극복한 인물들은 신앙의 사람으로 기억되고 극복하지 못한 인물들은 좋지 못한 말로로 기억되었죠. 예슈아가 악마에게 받은 3가지 시험은 우리가 삶에서 마주하는 대표적인 유혹들이에요. 음식(재물)의 유혹 기적의 유혹 권세의 유혹 1. 음식(재물)의 유혹 우리는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하며 살죠. 그 삶의 중심에는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음식과 거처 등의 재산이 포함되요. 어떤 종교든 공통적으로 주의하는 것은 바로 이 물욕에 대한 부분이에요. 사람은 만족하지 못하는 동물이에요. 0에서 1이 되면 충족되는 프로그램과 달라요. 1이 충족되면 2와 3을 필요로 하게 되죠. 배 고프지 않은 상태가 되면 배 부르기 원하고, 배가 부르면 ..
고난의 열매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이라고 해도, 두려움이 밀려오지 않는 때는 없는 것 같아요. 인생은 결코 짧지 않고, 정말 많은 일들을 겪게 되거든요. 매일 같이 기도 드렸던 것은 부디 내일은 평안하게 지켜달라는 것이었죠. 하지만 늘 불안 속에서 살아야 했어요. 주변의 누군가는 정말 안정적이고 풍족한 삶을 살아가는데 반해, 저의 삶은 언제나 위기와 가난이 이어졌죠.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고민한 적도 많아요. 저의 신앙이 잘못 되었던 것일까, 기도를 잘못 드렸던 것일까. 하지만 곰곰히 생각하던 중에 한 가지 결론에 도착할 수 있었어요. 이 위기는 제가 이겨낼 수 있기 때문에 주어진 것이라는 점. 편안한 삶을 살아온 사람은 갑작스러운 재난 앞에 어떻게 무너질 지 몰라요. 배 부른 삶을 살아온 사람이 갑작스럽게 굶게 된다..
시작된다는 것 시작은 하는 것이 아니라, 되는 것 같아요. 무언가가 끝났다고 생각되면, 바로 그 무언가에 이어져 새로운 것이 시작되곤 하거든요. 인생에 완전한 끝이 없는 것은, '다시' 시작되는 것 때문이 아닐까 해요. 힘든 한 해를 보내고 너무너무 지쳐서 이제 끝났다고 쓰러지며 끝내게 되었지만, 변함없이 새 해가 시작되었고 저의 인생은 계속해서 이어지게 되었죠. 신앙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봉사가 끝나든, 교회 생활이 끝나든, 무언가가 끝났다고 느껴지더라도, 그것이 신앙의 끝으로 맺어지지는 않더군요. 바로 또 새로운 신앙의 연결고리가 이어지는 것이 반복되었죠. 유한한 인생 속에서 무한한 끝과 시작의 반복.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에 주신 축복 중 하나가 아닐까요? 우리의 실수를 정리하기 위한 끝과, 다듬어..